역문협에서는 지난 1월 19일~23일 4박5일 동안 일본에 소재한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좇고 고대 한일관계사의 진실을 찾는 역사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역사기행의 첫 여정은 규슈 북부의 후쿠오카현 일대였습니다.

일본열도에서 한반도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규슈지역은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건너가 개척한 이주민(일명 ‘도래인’)들이 많았습니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선조들은 일본 땅에 벼농사, 청동기 및 철기, 민무늬 토기 등을 전파하며 야요이 시대를 열었고, 이후로도 가야~백제 이주민들이 건너가며 규슈 일대에 강력한 권력을 지닌 소국들을 건설하며 번영했습니다.

첫날, 참가자들은 일본 첫 벼농사 유적으로 알려진 이타즈케 유적, 고대~중세 시기 한반도 및 중국과의 교류 창구였던 태재부(다자이후) 유적, 경북 청도군 일대에서 진한 소국 중 하나인 이서국을 경영하다가 신라에 의해 정복당하자 그 주민들이 배를 타고 이토시마 일대에 정착해 고국을 그리며 세운 이도국(이토국)의 역사가 담긴 박물관과 그 주민들이 조성한 고분으로서 일각에선 고대 왜국의 여왕 히미코(비미호)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히라바루 왕묘, 가야 계통 이주민들이 건너와 가야소국(《광개토왕릉비》 신묘년 기사에 나오는 ‘왜’로 추정되는 그 나라)을 건설하고 이름을 붙인 ‘가야산’ 지명이 그대로 남은 곳에 조성된 시토 고인돌 등을 돌아봤습니다.

북규슈 곳곳에 소재한 고대에 고향을 떠나 이역 땅에 문명을 전파한 선조들의 발자취를 둘러보며 기행 참가자들은 감회에 빠졌습니다.  특히, 고국이 보이는 가야산을 등지고 묻힌 고인돌과 곳곳에 남아있는 ‘가야’ 지명에서 느껴지는 선조들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란! 이전에 화제가 되었던 일본 교포 학교의 교가에서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가사가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첫날 기행을 마치고 하카타역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저녁을 먹고서 신칸센을 타고 다음날 일정이 있는 오카야마로 향했습니다.

2일차는 기비(오카야마현) 일대로 추정되는 가야소국과 그에 설치된 임나일본부의 진실을 찾는 여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간 곳은 오카야마시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인 오다라역 일대입니다. 이곳은 ‘다다라’라고도 부르는데,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라가 가야를 칠 때 주둔했던 다다라로 유력한 장소입니다.  《일본서기》 기록에 따르면 다다라는 해안가에 넓게 퍼진 벌판이었는데,  오다라 마을은 해당 기록의 다다라벌의 해안 주변 벌판과 딱 들어맞습니다. 즉, 《일본서기》의 해당 기사 내용은 기비지역에 우리 선조들이 각각 설치했던 가야 계통 소국, 신라 계통 소국에 대한 내용이었던 것이지요. 이외에도 이 지역에 가야, 신라뿐 아니라 백제, 고구려 사람들도 적잖게 넘어와서 각각 소국들을 형성했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며 참가자들은 오다라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두번째로, 일본열도의 내해인 세토내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전망대에서 드넓게 펼쳐진 세토내해와 여러 섬들을 배경으로 참가자들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기비 가야소국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소자시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고, 소자시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빗추국 소자궁 신사를 둘러보았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한 일본의 한 마을이지만, 이곳이 일제가 한반도 가야지방이라 왜곡했던 ‘임나일본부’가 실제로 설치된 장소인 줄 누가 알았을까요? 6세기경 나라에 있던 야마토정권이 점차 서부 일본을 통합하던 과정에 이 지역에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던 가야소국을 복속하며 세운 출장소인 ‘미야케’가 바로 임나일본부의 실체인 것이지요.
이어서, 참가자들은 기비지방에 위치한 대표적 전방후원분인 쯔쿠리야마(조산) 무덤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전방후원분인 쯔쿠리야마(조산) 무덤은 5세기 초반에 조성되었는데, 이는 기내지방에 있는 양대 거대 무덤인 다이센무덤(일명 인덕천황릉)-곤다야마무덤(일명 응신천황릉) 조성 시기(6세기)보다 훨씬 이른 시기입니다.
야마토 정권이 있던 기내지방보다 이른 시기에 그에 못지 않은 규모의 무덤이 조성된 것에서, 5세기 당시 야마토 정권이 서부 일본 전체를 통합하지 못했으며 이곳에 야마토 정권에 버금가는 강력한 소국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무덤 주변으로는 6기 이상의 배총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사카키야마무덤에서 출토된 청동 말띠고리는 경남 일대 가야무덤에 발굴된 말띠고리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이 무덤을 축조한 사람들이 가야에서 건너온 우리 선조들이란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즉, 기비 가야소국은 야마토 정권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야마토 정권에 버금가는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던 것입니다.
2일차 마지막 일정은 기비지역에서 가장 거대한 신사인 기비쯔신사입니다.
6세기 경 야마토 정권으로부터 파견되어 기비지역의 유력자였던 우라를 친 인물인 기비쯔히코와 우라를 함께 모신 기비쯔신사는 그냥 보면 평범한 일본 신사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선조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기비쯔히코가 친 우라는 백제계통 인물로 파악되며, 우라를 친 기비쯔히코 역시 기비지방 출신에 가야계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기비쯔히코 이야기에 묘사된 우라와의 전투 과정도 우리 설화와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우라가 기비쯔히코를 피하고자 꿩으로 변해 날아가면 기비쯔히코가 독수리로 변해 쫓고, 이어서 우라가 잉어로 변해 물로 도망치자 기비쯔히코가 또 매로 변해 잉어로 변한 우라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마치 고주몽 설화에서 고주몽과 송양 사이에 벌어진 도술 대결이나 가야 건국설화에서 김수로왕과 신라 석탈해 간 대결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기비쯔히코 설화는 훗날 각색되어 유명한 ‘모모타로(복숭아 동자)’ 이야기가 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신사에 얽힌 이야기와 우리 선조들과의 연관성에 대한 흥미로운 해설을 들으며 신사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이후, 오사카로 이동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3일차부터는 오사카-나라-교토 등 기내지방에 숨겨진 선조들의 흔적을 찾는 여정으로 이어갔습니다.
먼저,  오사카부 사카이에 있는 일본 최대 전방후원분이자 세계 최대의 무덤인 다이센무덤을 들렀는데, 일본에선 이 무덤을 ‘인덕천황릉’으로 비정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 무덤 역시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수해로 무덤 일부가 무너져 발굴조사에 나섰었는데, 여기서 나온 고리자루큰칼, 마구류, 청동거울 등 부장품이 백제 무령왕릉과 같은 종류였던 것이지요. 이를 통해, 다이센무덤이 6세기에 백제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주도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아스카 문화가 형성된 나라 아스카 일대 유적입니다.

참가자들은 야마토 정권 초반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여러 번에 걸쳐 지은 왕궁 터를 비롯하여, 6~7세기 당시 야마토 정권에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백제계 귀족 소가씨가 주도하여 지은 아스카사(비조사) 와 안에 모셔진 백제에서 만들어진 큰 불상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아스카사의 경우, 현재는 평범한 일본식 절이지만 그 내부에는 당시에 고구려~백제 양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또한, 본당 경내엔 당시의 아스카사를 묘사한 그림 등이 남아 있어 그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원래 있던 절은 사라졌지만, 백제의 숨결이 들어간 불상은 1,400여 년을 버티며 내려왔다는 사실에 참가자들은 감탄했습니다. 또한, 절과 불상 자체는 백제 양식이지만 금당 형태는 고구려 양식(1탑 3금당), 건축 기법 역시 고구려자(고마척)에 따라 지어졌다는 점도 흥미로웠으며, 아스카사에서 출토된 기와 문양은 익산 미륵사에서 봤던 기와와 얼마나 똑같던지! 마치 일본에서 삼국시대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참가자들은 다카마쯔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아스카 시대에 세워진 다카마쯔 무덤은 화려한 벽화로 유명한데, 익히 알려져 있듯 그림은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입니다. 여인들이 입은 주름치마는 그냥 한복 그 자체로 마치 수산리무덤의 다홍치마가 연상되며, 무덤벽 네 면에 그려진 현무, 청룡, 백호는 남포 강서무덤의 사신도를 보는 듯했습니다. 또한, 천장의 그려진 별자리는 평양의 별자리라는 설명에 참가자들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다음은 덴리시에 있는 이소노카미 신궁입니다. 이곳은 백제에서 왜국에 전해 준 칠지도가 보관된 장소로 유명한데, 참가자들은 신사를 둘러보며 칠지도가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또 칠지도를 둘러싼 한국-일본 학계의 논쟁과 진실에 대한 흥미로운 해설을 들었습니다.
3일차 마지막 여정은 나라에 있는 법륭사입니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법륭사는 아스카 시대에 성덕태자가 주도하여 짓고 1,400여 년을 이어온 역사 깊은 절인데, 건축 과정에서 백제 건축 기술이 사용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경내에 들어서자 우리를 맞이하는 금당과 5중 목탑은 마치 백제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한,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린 금당벽화를 비롯하여 백제 위덕왕이 부왕인 성왕을 추모하고자 성왕의 모습을 본따 조각했다는 거대한 백제관음상, 목탑 뒤편에 있는 석가모니의 열반을 묘사한 조각들, 성덕태자를 기리고자 세워진 몽전 등 다양한 볼거리들은 참가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오사카에서 중간 뒷풀이를 하며 얼마 전 돌아가신 조성우 이사님 추도식을 조촐하게나마 열어 오랫동안 역문협의 활동을 아끼고 성원해 주신 조성우 이사님의 삶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4일차에는 교토에 있는 다양한 역사문화유적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덴류지-은각사(지소지)-니조성 등을 둘러보며, 참가자들은 우리와 다른 일본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정 마지막에는 신라에서 만들어 전해진 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는 광륭사에 들렸습니다.
마지막으로, 5일차에는 오사카로 이동하여 오사카성, 사천왕사 등을 둘러보고 도톤보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4박5일 간의 초기 한일관계 진실을 찾는 역사기행은  일본 곳곳에 숨어 있던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발견하고 그 의의를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일제가 이에 대해 얼마나 열등감을 가지고 그 의미를 축소, 왜곡하려 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으며 역사를 통해 올바른 한일관계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할 수 있는 뜻깊은 기행이었습니다.
역문협은 앞으로도 우리 역사와 문화의 발자취를 좇고 역사 속 자주의 진주를 찾는 역사기행을 회원 여러분과 함께 떠나고자 합니다.